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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2

나만의 '까탈스러움'을 찾아서: 좋아함 그 이상의 깊이에 대하여

단순히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어떤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금방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무언가를 깊게 파고드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법인데, '좋아함'만으로는 그 심연까지 들어가기가 힘들거든요. 좋아하면서도 세부 사항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 저에게는 '까탈스러움'보다 '오타쿠스러움'이라는 표현이 더 와닿습니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깊게 들어가는 힘이죠. 돌이켜보면 제게도 사소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어릴 적 자동차 모델명을 줄줄 외우고, 계기판을 보며 최고 속도를 확인하던 기억들처럼 말이죠.

더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영역은 없을까 고민해 봅니다. 만화를 전공하던 미술부 시절, 인체 근육의 명칭을 생소하게 외우던 친구가 생각나네요. 최근 김형태 디렉터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인체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설명하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깊은 연구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비너스의 언덕'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전공 교수님처럼 해박하게 설명하는 그 정도의 까탈스러움이 있었기에 업계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겠지요.

어떤 분야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한 블로거가 모션 그래퍼를 꿈꿨지만 세부 사항에 몰입하는 타입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 역시 영상 동아리 활동을 하며 비슷한 꿈을 꿨지만, 냉정하게 제 작업물에는 선배들이 보여준 치밀함이 부족하다는 벽을 느꼈습니다. 카피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작업에서 독보적인 퀄리티를 찍어낼 용기나 집요함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UI/UX와 브랜드 디자인: 차선책의 연장선에서

현재 업으로 삼고 있는 분야는 사실 제게 '차선책'이었습니다. 모션 그래픽으로는 경쟁력이 부족하다 느꼈고, 스마트폰 앱 시장이 급부상하며 수요가 넘치던 때였기에 상대적으로 작업량이 적어 보이는 이 길을 선택했죠. 고등학교 시절 만화가를 포기하고 디자인과를 선택했던 것의 연장선이기도 했습니다. 영상이나 모션 그래픽은 우상으로 여겼지만, 업으로 삼기에는 꽤 힘든 일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했던 것 같습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이런 고민은 더 깊어집니다. 이제 프롬프트만으로 UI 디자인이 너무나 쉽게 뽑히는 시대입니다. 올해 안에는 사람이 수정하기 쉬운 구조로 레이어까지 정리된 툴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되면 직접 UI를 잡는 일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좋아해서 시작했다기보다 수요가 있어 선택했던 일들이 AI 시대에도 계속 유효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네요. 회사에서도 디자인 실무보다는 매니징이나 사무 업무가 늘어가는 것이 현실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존재하는 콘텐츠

AI는 그림 또한 놀라운 수준으로 생성해냅니다. 충격적일 정도로 사람들의 이상향과 취향을 정확히 꿰뚫어 보죠. 하지만 거기에는 '서사'가 없습니다. 샤넬백이 샤넬백인 이유는 단지 퀄리티 때문이 아니라, 130년의 역사와 코코 샤넬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의 수요는 계속될 것입니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겠지만, 그 뒤에 '사람'이 존재하는 콘텐츠에 대한 갈망은 남을 거라 믿습니다. 저 또한 그런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지만, 그것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다만, 나만이 까탈스럽게 굴 수 있는 '개성'과 '서사'를 찾는 것만이 AI 시대에 제가 나아갈 길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입니다.